2008년 11월 27일
"잘 모르겠어요."
"그만하세요, 할아버지. 라일라가 지루해하겠어요." 하킴은 곧 나가려는 사람처럼 문 옆에 서 있었다.
"지루해한다니? 듣기 싫어하는 건 바로 너다." 그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내게 말했다. "저 애는 성스러운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아. 예언자 마호메트에 대해 말하는 것도 들으려 하지 않지. 좋아하는 거라고는 그저 그 뭐라더라, 파노......"
"파농이요."
"그래, 파노, 파농. 나도 그 사람이 훌륭한 말을 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중요한 걸,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거야."
그러고서 그는 오래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내가 물었다.
"뭐가 중요한 건가요, 할아버지?"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신의 눈에는 보석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지."
하킴이 짜증스러워하자, 노인은 장난스런 어조로 말을 바꿨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만두자. 저 아이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아. 그런데, 라일라야, 너는 내 말을 믿느냐?"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애가 좋아하는 파농이라는 사람이 무척 정확한 얘기를 한 건 사실이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살을 먹는다는 것 말이다. 프랑스인들이 우리 마을에 왔을 때, 그 자들은 젊은 남자들을 데려다 밭에서 일을 시켰고, 젊은 여자들은 식탁 시중을 들게 하거나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아니면 자기들 여자는 프랑스에 두고 왔으니 그 대신 데리고 자곤 했지. 그리고 흑인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여차하면 자기들이 잡아 먹을 거라고 떠벌이곤 했단다."
"그런 후에 그자들은 흑인들을 프랑스 땅의 도살장으로, 트리폴리텐느의 그 전쟁터로 내몰았지요."
엘 하즈는 상을 찡그렸다.
"그건 사정이 다르다. 우리는 인류의 적에 대항해서 싸운거야."
"왜 죽으러 가는지 알기나 했을까요?"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다시 침묵이 찾아들었고, 엘 하즈는 열린 창문을 마주하고 꿈꾸는 표정으로 담배를 피웠다.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엘 하즈는연한 푸른색에 가장가리를 흰색으로 두르고, 깃이 없고 품이 큰 아프리카산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광택나는 커다란검은 가죽 구두와 면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는 길다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꼿꼿이 상체를 세우고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않았다.
우리가 떠나려 할 때, 그는 다시 나의 얼굴을 만지고 내 눈과 입술을 쓰다듬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나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나서게 될 거야." 마치 그가 나에게 축복을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한 경의와 사랑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건물을 나서니 이미 밤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집시들의 야영지를 보았다. 그들은 섬에 난파한 사람들처럼, 고속도로들이 지나는 사이의 진흙투성이 땅에 자리잡고 있었다.
-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중에서.
최수철 역, 문학동네: pp. 153-155.
최수철 역, 문학동네: pp. 153-155.
# by | 2008/11/27 15:14 | :: roza :: | 트랙백 | 덧글(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