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어요."



"그만하세요, 할아버지. 라일라가 지루해하겠어요." 하킴은 곧 나가려는 사람처럼 문 옆에 서 있었다.

"지루해한다니? 듣기 싫어하는 건 바로 너다." 그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내게 말했다. "저 애는 성스러운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아. 예언자 마호메트에 대해 말하는 것도 들으려 하지 않지. 좋아하는 거라고는 그저 그 뭐라더라, 파노......"

"파농이요."

"그래, 파노, 파농. 나도 그 사람이 훌륭한 말을 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중요한 걸,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거야."

그러고서 그는 오래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내가 물었다.

"뭐가 중요한 건가요, 할아버지?"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신의 눈에는 보석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지."

하킴이 짜증스러워하자, 노인은 장난스런 어조로 말을 바꿨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만두자. 저 아이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아. 그런데, 라일라야, 너는 내 말을 믿느냐?"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애가 좋아하는 파농이라는 사람이 무척 정확한 얘기를 한 건 사실이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살을 먹는다는 것 말이다. 프랑스인들이 우리 마을에 왔을 때, 그 자들은 젊은 남자들을 데려다 밭에서 일을 시켰고, 젊은 여자들은 식탁 시중을 들게 하거나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아니면 자기들 여자는 프랑스에 두고 왔으니 그 대신 데리고 자곤 했지. 그리고 흑인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여차하면 자기들이 잡아 먹을 거라고 떠벌이곤 했단다."

"그런 후에 그자들은 흑인들을 프랑스 땅의 도살장으로, 트리폴리텐느의 그 전쟁터로 내몰았지요."

엘 하즈는 상을 찡그렸다.

"그건 사정이 다르다. 우리는 인류의 적에 대항해서 싸운거야."

"왜 죽으러 가는지 알기나 했을까요?"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다시 침묵이 찾아들었고, 엘 하즈는 열린 창문을 마주하고 꿈꾸는 표정으로 담배를 피웠다.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엘 하즈는연한 푸른색에 가장가리를 흰색으로 두르고, 깃이 없고 품이 큰 아프리카산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광택나는 커다란검은 가죽 구두와 면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는 길다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꼿꼿이 상체를 세우고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않았다.

우리가 떠나려 할 때, 그는 다시 나의 얼굴을 만지고 내 눈과 입술을 쓰다듬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나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나서게 될 거야." 마치 그가 나에게 축복을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한 경의와 사랑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건물을 나서니 이미 밤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집시들의 야영지를 보았다. 그들은 섬에 난파한 사람들처럼, 고속도로들이 지나는 사이의 진흙투성이 땅에 자리잡고 있었다.



-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중에서.
최수철 역, 문학동네: pp. 153-155.





by roza | 2008/11/27 15:14 | :: roza :: | 트랙백 | 덧글(1)

Why community does exclude the others?




Jean-Luc Nancy - "Love and Community"(2001 10/10)







Slavoj Zizek - "On Belief and Otherness"(2002 1/6)



by roza | 2008/10/03 16:39 | :: roza :: | 트랙백 | 덧글(0)

사소한 궁금증




친구와 홍대를 걷다가 미스터 도넛에 들렀다. 미스도의 캐릭터는 "Pon-de-Lion". 무슨 뜻인지 갑자기 너무너무 궁금해져서, google it!

미스터 도넛을 통칭하는 말이 "Pon-de-Ringu". 이 말을 거칠게 번역하면"Ring of Bubbles"가 된단다. 왜 난데없이 비눗방울 거품? 이건, 도넛을 직접 손으로 만들면 그 모양이 매끄러운 링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모양을 한 링(=미스도의 도넛 모양)이 되는데, 그게 비눗방울 거품처럼 동글동글하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미스도의 도넛은 핸드메이드 도넛처럼 맛있고 좋다, 뭐 이런 식의 브랜드 마케팅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봄-ㅎㅎ(하여간 일본인들의 상술은 귀엽지만 영악하다니깐~)

그래서 자연히 "Pon-de-Lion"은 "Pon-de-Ringu", 즉 거품 모양을 한 갈기를 가진 미스도의 캐릭터라는 의미에서 폰데라이온이 되었다고. 근데 이 녀석은 배고프면 자기 갈기를 뜯어 먹는단다. 이 정보를 제공한 블로그 포스팅(http://www.junosora.com/wp/tigerscrane/2007/05/11/mister-donut-misdo/)에 달린 댓글에 의하면 중국 고전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고.

"The lion must be from the old Chinese story of the lazy man who needed to go somewhere, so his wife fashoned a giant bread around his neck so he wouldn’t have to carry any food on his journey.
Or maybe the story went that she needed to leave and he couldn’t cook and so she fashioned a bread ring around his neck that he could eat. Anyway, at some point, he starves to death because he’s too lazy to rotate his donut around to the front."







by roza | 2008/02/28 23:11 | :: roza :: | 트랙백 | 덧글(0)

"사랑을 믿다"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되뇌이는 날들이 있다. 그런 생각은 두 가지 방식으로 표출된다. 하나는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건방진 조소, 다른 하나는 '아끼다가도 남들이 하고/가지고 다니는 건 싫어진다'는 유치함. 소위 '주류 사회'에는 진입을 차단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그렇다고 작은 주체들과 함께하는 삶은 제대로 마주보지 못한다는 그 비겁함과 소심함이 스스로를 고립으로 몰아넣는다. 뭐를 하든 '혼자가 편하다'고 자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연히 타인의 삶 속에서 나와 비슷한 실패나 절망, 혹은 불안을 보게 될 때,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구나' 하며 나같은-'나같은' = '바보같은' = '영악하지 못한' = '은수저를 갖고 태어나지 못한' 등등 - '나만 그런 게 아니군' 하는 생각에,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유대감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역시 비겁하다. 이 비겁한 안도감은, 권여선에 의하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속 일상의 별 것 아닌 감정일 수 있다. 


"나는 종종 실연의 유대감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가 떠나든 그들이 떠나든 둘 중 한쪽은 어느 별인가로 떠났으면 좋겠다 싶은, 참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인간형들이 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우연히 그들 중 누군가가 얼마 전에 지독한 실연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나는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하늘을 이고 살기조차 싫었던 그 인간을 내 집에 대려와 술을 대접하고 같은 천장 아래 재울 수도 있다. 심지어 술 냄새 풍기는 그 인간의 입술에 부디 슬픈 꿈일랑 꾸지 말라고 굿나잇 키스까지 해줄 용의가 있다. 허기의 유대나 가난의 유대 같은 것이 있고, 시험강받의 유대, 채식주의의 유대, 실종 자녀를 둔 부모들의 유대 등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별난 인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실연의 유대만큼 대책 없이 축축하고 뒤끝 없이 아리따운 유대를 상상할 수 없다."


"사랑과 믿음, 상당히 어려운 조합이다. 그나마 소망은 뺀다 쳐도, 사랑과 믿음 중 하나만도 제대로 감당하기 힘든 터에 감히 둘을 술목 관계로 엮어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니, 믿음을 사랑한 적이 있다는 말만큼이나 뭐가 뭔지 모르게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나처럼 겁과 의심이 많고 감정에 인색한 인간이 뭘 믿은 적이 있다고?"




인생의 한 고비에서의 좌초라든가 실연을 맞이하는 인간의 감정이란 얄팍하기 그지없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슬픔을 남이 알아주길 바라다가도 금세 신포도를 만들어 버리거나 냉소적으로 되어버린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뒤를 돌아보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이"를 맞이한다.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듣는 공안 내가 겪고 있는 실연의 고통이 서서히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는 대답을 되풀이하면서, 그녀가 자꾸 나의 안부를 묻고 나는 그것에 괜찮다고 대답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괜찮지? 괜찮아. 그러면서 나는 정말 괜찮아졌다. 이제 모든 것은 소소한 과거사가 되었다. 나는 기차간 모양의 술집 분위기를 내는 이 단골 술집에 혼자 앉아, 맞아 그때 그런 얘길 했었지라든가 왜 그랬을까 그녀는, 하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름, 그녀가 했던 얘기들, 그녀의 피식 웃던 표정, 그녀의 단정한 인중선과 윗입술을 떠올린다.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위로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처음 접하는 권여선의 글은 잘 씹는 맛이 났다. 씹을 수록 그 단맛에 침이 고여 여러번 읽게 되었다. 과장되지 않은 담백한 묘사는 한 편의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의 강약이 잘 조절된 문장에서는 리듬감이 느껴졌다. 내가 바라던 소설이 이런 거였나, 싶을 정도였다. 좋은 글을 한 편 읽고 났을 때의 상쾌함이 작가의 쓴맛나는 성찰과 체념과 어우러져 입맛을 다시게 한다. "싱거운 맥주 맛 속에 뾰족한 심처럼 독한 안동소주 향이 박"힌 맛이 이런 것일까.



권여선, "사랑을 믿다", 2008년 이상문학상수상작.


by roza | 2008/02/21 17:53 | :: roza ::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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